= 탄핵 정국 속 대규모 시위, 역사적 갈등과 닮은꼴
= 미적거리는 헌재발표, 격화하는 찬반 집회
= 헌재 판결 이후 더 거세질 시위… 해법은?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기일을 놓고 한 달 넘게 고심을 이어가는 가운데, 주말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찬반 세력이 대규모 집회를 열며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마치 해방 직후 한국이 겪었던 좌우 대립과 유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1945년 모스크바 3국 외무장관회의에서 결정된 신탁통치안을 두고 찬탁(贊託)과 반탁(反託) 세력이 극명하게 대립했으며, 그 결과 전국적으로 폭력 사태가 발생한 바 있다.
당시 좌우익 모두 신탁통치에 반대했으나, 소련이 이를 지지하자 공산당과 좌익 세력이 찬탁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이는 누군가를 위한 정치적 이익이 개입된 것으로, 결국 북한 김일성 체제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찬탁·반탁 세력 간 충돌이 벌어졌으며, 대구에서는 남조선노동당(남로당)과 좌익 세력의 반미 시위가 전국적인 총파업으로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서가 습격당하고, 관공서가 방화되는 등 유혈사태로 번지며 수백 명이 사망했다.
제주도에서도 1947년 3·1절 기념식 도중 경찰이 군중을 향해 발포해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는 결국 1948년 제주 4·3 사건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 역시 남대문을 중심으로 찬탁·반탁 시위가 돌팔매와 죽창이 난무하는 폭력 사태로 변질되었으며, 이러한 대립은 결국 1950년 한국전쟁으로까지 이어졌다.
현재 헌법재판소 앞을 비롯해 광화문, 여의도, 남태령, 부산, 대구 등 전국 곳곳에서 탄핵 찬반 시위가 연일 열리고 있다. 특히 3월 마지막 주말 광화문 집회는 꽃샘추위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인파가 몰리며 양측의 대치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아직 대규모 폭력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장기간 대치 상황 속에서 진압 경찰과 시위대 모두 극도로 지쳐 있으며, 언제든지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탄핵 정국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오히려 판결 이후 양측의 반발이 더욱 격화될 가능성이 커, 사회적 혼란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극단적인 대립을 피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와 대화의 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현재의 정국에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
탄핵 정국의 끝이 어디로 향할지, 그리고 대한민국이 또다시 역사 속 좌우 대립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재외국민신문 강남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