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전문에 명시된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제헌국회는 제헌헌법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명기하였다.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전문도 “대한민국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중략)을 계승하고”라고 밝혀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3.1 운동과 임시정부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고종의 갑작스러운 의문사와 장례식을 계기로 시작된 1919년 3.1 운동에는 약 202만 명이 참여하였다. 당시 조선 전체 인구 2천만 명의 10%에 달하는 규모였다.
‘대동단결선언’과 임시정부
신규식, 신채호, 조소앙 등 독립운동가 14인은 1917년 작성한 ‘대동단결선언’에서 “한일병합조약을 통해 대한제국 황제 순종이 대한제국의 주권을 일본 제국에게 양도한 행위는 무효이며, 포기한 주권은 대한국민에게로 승계됐다”고 천명했다.
해외 각지에 현존하는 모든 단체를 모아 최고기관을 조직할 것을 제안한 ‘대동단결선언’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큰 역할을 하였다.
세계최초로 헌법에 민주공화제 규정
3.1 운동 이후, 상하이에서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1919년 4월 10일 임시의정원을 창설하고 4월 11일 상해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이 과정에서 국호와 정부 형태, 임시헌법 등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국호는 신석우 선생이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라고 제안하여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대한민국 임시헌장도 제정했다.
세계정치사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결정이 있었다. 임시헌장 제1조는 국호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었다. 당시 세계 어디에도 헌법에 민주공화제를 규정한 나라는 없었다. 세계 최초였다.
또한 제3조에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함’과 같이 모든 권리 중 가장 먼저 평등권을 명시하고 있다.
상하이 임시정부를 제외한 여러 단체들은 임시정부라고 스스로 칭한 적은 없다. 임시정부는 정부를 지칭하는 이름으로만 사용되었다.
각 단체들은 국호인 고려, 신한민국, 조선민국, 한성정부의 대조선공화국 등을 각각 사용하다가 통합에 따라 상하이 임시정부의 대한민국으로 통일된 것이다.
상해임시정부와 재외동포
임시정부의 인적 구성은 사실상 재외동포들로 이루어졌다. 임시정부의 독립자금은 하와이 사탕수수밭 농부 등 재미동포들을 중심으로 한 재외동포들의 헌신에 크게 힘입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임시정부 요인들은 중국·미국·영국·소련·프랑스·폴란드·몽골 등과의 국교 수립, 국제연맹과 유럽 등 세계 열국에 대한 다양한 외교활동과 각종 국제회의 참석 등으로 대한민국 독립에 대한 국제여론을 환기시켰다.
윤봉길의사의 상해의거도 중국의 지원과 함께 대한민국 독립에 대한 국제여론을 이끌어내었다. 충칭에 정착한 임시정부는 광복군을 창설하여 유엔군의 일원으로 활약하는가 하면, 연합군과 국토수복작전을 준비하던 중 일제의 패망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기미독립선언서와 대한민국 임시헌장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헌장의 반포일(1919년 4월 11일)은 “대한민국 원년”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연호는 ‘대한민국 30년’으로 기산 되어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을 ‘대한민국 원년’으로 보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을 ‘대한민국 30년’으로 표기한 것이다.
임시헌장 전문은 “우리 국민은 (중략) 독립한 민주국의 자유민이라”하여 기미독립선언서의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는 내용을 옮겨 왔다.
기미독립선언서에는 무력을 이용해 투쟁하자는 내용은 전혀 없다. ‘정의라는 이름의 군대’와 ‘인도주의라는 이름의 무기’에 힘입어 독립을 주장할 뿐이다.
‘일본의 배신을 죄주거나 무도함을 책망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난 잘못을 꾸짖을 겨를이 없다’ ‘일제에 합병되어 세계 문화에 기여할 기회를 잃었다’는 등 거시적 표명이 주를 이루었다.
왕이 도망을 가도 나라를 지킨 건 백성
왜란, 호란, 일제강점 등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목숨 걸고 일어난 건 권력을 누리던 자가 아니라 핍박받고 업신받던 백성들이었다.
백성을 버리고 도망을 간 건 왕이었지만 나라를 지킨 건 백성들이었다. 나라를 망친건 권력자들이었지만, 나라를 구한 건 백성들이었다. 속세를 떠난 승려, 노비, 백정, 포수, 기생들이 저마다의 위치에서 싸우다 아름답게 스러져갔다.
돌고 도는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도 민초들은 나라를 지켜왔다. 시대는 변해도 나라를 지켜내야 한다는 민초들의 숭고한 정신은 한치의 변함도 없이 이어져 왔다. 그래서 더욱 위대하고 깊은 울림으로 우리에게 전해오는 ‘민초’와 ‘백성’의 가치이다.
사람이 곧 하늘이며, 국민이 곧 하늘이다
헌법은 주권자인 국민을 위해 만든 법 중의 법이다. 헌법 제2장 제10조의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서 제39조까지 ‘국민’이라는 단어가 31번이나 나온다.
3.1 운동 선언 민족대표 33인의 대표 격인 손병희 선생은 ‘인내천’, 즉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갈파했다. 백번 옳으신 말씀이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고자 한다. ‘민내천’ 즉 ‘국민이 곧 하늘이다’
나라가 어렵다. 최근 재외동포 후배와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나라가’를 선창 하면 ‘나라도’를 후창 해달라는 건배사가 인상적이었다. ‘나라가 어려우니 나라도 잘하자’란 의미였다.
올해는 3.1 운동으로 대한민국이 건립된 지 106주년이자 을사늑약 120주년, 광복 80주년이다. 3.1 정신으로 모두가 하나 되어 더욱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들어가야 할 때이다. 이때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백성이 지켜온 나라, 국민이 지켜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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