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더불어민주당 전진숙(왼쪽부터), 박홍배, 김문수 의원 등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조기 파면 촉구 삭발식을 하고 있다. 2025.3.11/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오랜만에 햇살이 비친 11일 여의도의 점심시간. 국회 본관 계단 앞,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문수, 박홍배, 전진숙 의원이 빨간 글씨로 ‘조기 파면’이 적힌 흰 가운을 두르고 나란히 앉았다. 윤석열 대통령 조기 파면을 위한 삭발식을 위해 나선 것이다. 곧이어 뮤지컬 영웅 OST가 국회 경내에 울려 퍼졌고 “하늘이여 도와주소서, 우리 꿈 이루도록”이라는 가사가 나올 즈음엔 삭발식이 모두 끝났다. 삭발을 마친 뒤 전진숙 의원은 “제 머리카락으로 짚신을 지어 헌법재판관들에게 보내겠다”고 말했고, 박찬대 원내대표는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뭐든지 하겠다는 마음”이라고 부연했다.
한편 이 광경을 보던 일부 취재진 사이에서는 당혹스러움이 감지됐다. 대체 무엇을 이유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가? 당혹스러움은 관찰자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최근 민주당은 장외 집회를 본격화하며 매일 2회씩 비상 의원총회를 열고, 단식과 삭발까지 감행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초선 의원들이 중진 의원들의 소극적인 행동을 비판하며 장외투쟁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민주당이 삭발과 단식을 감행하고 거리로 나선 표면적 이유는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 촉구지만, 사실상 윤 대통령 석방 후 여론전에서 밀릴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한민국을 위해 뭐든지 하겠다지만, 과연 국회 제1당에서 할 수 있는 것이 헌재를 압박하는 거리 여론전뿐인가.
현재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에서 결정적 사유가 됐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권 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졸속 입법으로 공수처를 출범시킨 민주당에 책임이 있음을 모르는 이는 없다. 만성적 인력난과 타 기관 간 협력체계 문제 등 각종 입법 미비로 홍역을 앓아온 공수처는 출범 이후 ‘공수처법 개정’을 끊임없이 외쳐왔지만, 정치권은 오랫동안 이에 응답하지 않았고 결국 그 값을 함께 치르게 됐다. 책임을 인정하고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법 개정 등 방안을 강구할 때다.
제도 정치의 주축인 국회의원들은 여야 할 것 없이 때가 되면 거리로 나온다. 때로는 제도 정치가 광장 정치의 부름에 응답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선출된 권력인 제도 정치권이, 국회 내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음에도 거리 정치의 열기에 편승하는 것은 안일하다. 게다가 작금의 극단화된 거리 여론전에 마치 기름을 붓듯 너도나도 헌재를 압박하는 것이 과연 ‘투쟁’이라는 미명 하에 국민들에게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최근 기자가 만난 한 야당 중진 의원은 반복되는 의원총회에 피로감을 표하며 “의총을 할 때마다 삭발, 헌재 행진 등 더한 게 나오니 미치겠다”며 볼멘소리를 내기도 했다. 민주당은 헌재의 탄핵 인용을 촉구하기 위해 여의도 국회에서 광화문까지 약 8㎞를 행진하기로 했다. 민주당 의원 전원이 참석한다. 2~3시간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힘든 행진이 될 것이다. 삭발, 단식에 이어 고행을 자처하는 시위의 연장선이다.
민주당은 ‘살신성인’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을지 모르나 아스팔트를 가득 메우는데 쓰라고 국민들이 170석의 거대한 입법권을 준 것은 아닐 것이다. 제1당 민주당은 국회에서 광화문으로 행진할 것이 아니라. 광화문에서 국회로 행진의 방향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국회에는 그들이 숙의해야 할 반도체 특별법, 국민연금 개혁안, 민생회복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이 기다리고 있다.
임세원 기자<기사제공 = 하이유에스 코리아 제휴사, 뉴스1>